창업을 하고 회사를 운영한지 어느새 10년차가 되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건너 건너 소개를 통해 예비 창업자 분들을 만나고 고민 상담을 해드릴 기회가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 예비창업자 분들이 창업에 대해 불필요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 선택이 가지는 리스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철저히 현실적인 질문들을 던져볼 예정이다. “이래도 창업 하시겠습니까?” 혹은 “이런 준비는 확실히 되어 있습니까?” 와 같은 질문들이다.
1. 창업은 장기전이다. 버틸 체력은 충분한가?
아직 사업자등록도 하기 전인데 이런 식의 달콤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봤다.
“저희는 1년 내에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고, 출시 후 1년 내에 매출 XX억, 3년 내에는 XXX억을 달성할 예정입니다. 이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킨 후에는 매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실제로 저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팀을 갖고 있고, 아무리 많은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처음 예상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말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창업을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식당을 열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터진다. 훌륭한 해외 브랜드 국내 총판을 따냈지만 환율과 해상 운송비가 폭등한다. 믿던 동료와 싸워 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한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거래처가 파산한다. 우리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경쟁자들이 시장에 뛰어든다. 파나마 운하가 막혀 우리 제품을 싣고 가던 배가 멈춰버린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이런 일들은 안타깝지만 여러분이 창업을 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기간 동안 반드시 일어날 일들이다. “설마”라고 생각하는가? 현실에서는 위에 나열해둔 사례들보다 훨씬 가혹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 단언할 수 있다. 여러분도 반드시 겪게 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여러분이 공들여 만들어 둔 계획과 전략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여러분은 살아남기 위해 추가적인 투자나 대출을 알아보게 될 것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게 될 것이다. 회사가 자리를 잡고 유의미한 성과를 낼 때까지 여러분은 끝도 없는 문제와 매일같이 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쟁의 기간은 생각보다 아주 길다. 2년이 될 수도 있고, 5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넘어갈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 회사가 유의미한 이익을 발생시키는 데까지 4~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여러분은 이런 투쟁의 시간을 버텨 낼 체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체력은 신체적 체력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신적 체력까지 이야기한다. 여러분은 충분히 건강한가? 야근 수당도 없이 밤 늦게 까지, 필요하다면 주말도 없이 일할 수 있는가? 이런 업무 강도를 수년 간 견뎌낼 만큼 강한 신체를 갖고 있는가?
충분한 돈을 모아 뒀는가? 아니면 풍족한 투자금을 확보했는가? 회사가 유의미한 이익을 내기 전까지 여러분은 최저 시급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월급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기간을 버틸 수 있는 비상금을 모아뒀는가? 혹은 부유한 집안 출신인가? 아니면 매우 빈곤한 삶을 버틸 자신이 있는가?
여러분의 정신은 충분히 건강한가? 필자는 우울증 약을 먹으며 버티는 사장들을 많이 알고 있다. 필자 역시 정신적으로 힘들어졌을 때 심리상담을 오래 받았던 적이 있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문제, 일상적으로 견뎌야 하는 높은 수준의 압박감은 평소 성격이 아주 긍정적인 사람조차 어둡게 만들어버린다. 여러분은 수년간 지속되는 스트레스에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에 쉽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지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 내가 하려는 일과 관련된 나만의 무기가 있는가?
필자는 지난 2015년 첫 회사를 창업했었는데, 그 당시는 이제 막 미디어 커머스라는 분야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필자는 마케팅과 온라인 광고 분야에서 나름대로 탄탄한 경험을 갖고 있었고, 어떤 물건이든 온라인에서라면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이걸 바탕으로 회사를 시작했고, 제품 출시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실제로 첫 제품을 출시한 이후 판매는 순조로웠다. 마케팅 만큼은 정말 자신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필자의 무기는 온라인 마케팅이었다.
여러분이 창업하려는 분야에서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명확히 차별화 되는 기술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해당 제품에 대한 매니아 수준의 이해도를 갖추고 있는가? 수년간 넓고 두터운 업계 인맥을 축적해 두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이러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성과를 낼 자신이 있다.”의 심플한 문장 구조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들어도 쉽게 설득이 될 수 있는 단순한 논리 구조여야 한다.
여기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라면 창업을 추천하지 않는다. 물론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그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와 같은 비즈니스적인 고찰도 중요하다. 회사가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 가면 이런 고찰의 중요도가 더 커진다. 그러나 필자는 초기 단계에는 창업자 본인에 대한 고찰 ‘나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한 생각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고객과 아이템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회사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전혀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막상 시장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부딪치기 전까지는 시장과 고객의 명확한 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처음 세운 전략은 오히려 유연하게 수정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창업자 본인이, 팀이 갖고 있는 핵심 역량은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3. 돈 말고 내가 꼭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사실 돈은 매우 중요하다. 100%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돈일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돈이 유일한 이유가 된다면 금방 지치고 현타가 오기 쉽다. 왜냐하면 사업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정말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꾸준히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한다. 누군가는 유튜브 부업으로 수입을 얻고, 누군가는 유명 예술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사람들 중 5년, 10년이 지난 후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게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개인이 가진 능력과 적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정말 원하는 것이 돈 하나라면 창업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은 몇 번의 우연이 겹치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어 큰 돈을 얻기도 한다. 애초에 부유하게 태어난 사람들도 많다. 창업자가 돈만 생각한다면 그러한 우연한 돈의 흐름을 보고 큰 박탈감을 느끼며 동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너무 크다. 앞서 언급 했지만 창업은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너무 많고 극복해야 할 난관도 너무 많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그게 바로 경제적인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무서운 이야기지만 어쩌면 본인이 투입한 노력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이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자에게는 돈 말고 뭔가 다른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창업하려는 분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커서 그 일을 하는 것 자체 너무 즐겁다거나, 뭔가 새로운 일에 시도하고 성과를 내는 과정의 성취감이 크다거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회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보람차다거나 하는 이유들 말이다. 이런 이유가 있어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초기의 창업자를 가장 괴롭히는 것도 바로 돈이다. 돈 때문에 고생을 하다 보면 초심을 잃고 돈에 집착하게 되기가 쉽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돈 말고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텐데 말이다.

4. 수많은 잡일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돈 때문에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과 정 반대편에는 어떤 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커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섹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내용이다.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게임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서’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직 일에 대한 애정만으로 회사를 시작하는 것은 오직 돈만 생각하며 창업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장이 되면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행정적인 잡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가다 같은 재미 없는 일들을 하느라 정작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시간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필자도 다양한 잡일을 감당하며 살고 있다. 운영하는 회사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며 행정적인 업무들이 크게 늘어났다. 또, 직접 관리해야 하는 중요 거래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양도 크게 늘어났으며, 직원들이 많아지며 해당 직원들이 하는 일에 대해 피드백을 하는데 쓰는 시간도 많다. 거래처들이 요청한 사항 몇 개 대응하다 보면 직원들이 피드백을 요청한다. 회의 몇 개 참여하면 벌써 퇴근할 시간이 된다. 어떤 날은 여기저기서 주최하는 간담회, 행사 같은 것들을 참여하다 보면 그냥 하루가 간다. 필자도 분명 어떤 실무를 좋아해서 창업까지 하게 되었던 것 같은데,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잘 완성시키고 거기서 성취감을 느끼는 방식의 삶과 필자의 현재 삶은 꽤 다르다. 물론 팀을 구성하기에 따라 다르고 업무 분담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사업가의 하루는 많은 경우 잡무와 끝없는 회의로 채워져 있다.
초기 기업이라면 상황은 훨씬 좋지 않다. 다양한 업무를 담당해 줄 직원들이 없기 때문이다. 사장은 세무 자료 준비부터 마케팅, 영업부터 제품 포장까지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필자 역시 처음 커머스를 시작했을 때 하루 2시간씩은 꼭 택배 포장을 했었다. 택배 기사님이 방문하는 오후 5시가 되기 2시간 전부터는 함께 창업한 모든 동료들이 다같이 택배 포장을 시작했다. 나름의 분업도 되어 있었다. 누구는 택배 박스를 만들고, 누구는 송장을 들고 다니며 주문 들어온 제품들을 수집하고, 누구는 포장이 미처 되어 있지 않은 제품들을 OPP봉투에 넣어 포장했다. 3자 물류 업체를 쓰면 되는 일 아니었냐고? 일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 회사는 B2B납품 업무도 상당 부분의 비중으로 병행하고 있었고, 이는 외주를 줄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업무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직접 포장과 출고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 회사에 다양한 잡일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물리적으로 몸으로 떼워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으나 그 잡일의 양은 여러분의 상상보다 훨씬 많다. “회사를 만들면 내가 사장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실컷 할 수 있겠지?” 이런 환상을 갖고 있다면 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 현실은 직장인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잡일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5. 커리어 측면의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가?
물론 창업을 한번 했다고 해서 재취업이 불가능해지고 그런 것은 아니다. 개발이 되었든 디자인이 되었든 어떤 전문적인 분야에서 본인이 역량을 갖고 있다면 재취업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실패한 창업의 경험은 사회에서 경력 단절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경우 이걸 무슨 좋은 인생 경험이라고 봐주거나 인간적인 성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높게 쳐주지 않는다. 창업 전 본인의 전문성이나 커리어가 애매하다면 폐업 후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리스크를 분명히 인지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최근 필자는 창고 직원을 채용했다. 솔직히 말해 연봉이 높은 포지션도 아니었고, 시골 창고에서 근무하는 단순 노무직이었다. 많은 지원자들 중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지원자들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학벌이나 전 직장을 생각하면 우리 회사 포지션 대비 굉장히 오버스펙인 분들이 지원을 많이 했는데, 이 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력서에 창업 경험을 언급했다. 괜찮은 직장에서 영업직이나 마케팅, 경영 관리 등의 일을 하며 8~10년 정도 잘 다니다가 퇴사 후 6~7년 정도 창업에 도전했던 것이다. 창업이 잘 풀리지는 않았고, 이미 나이는 40대 중후반이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전 직장과 비슷한 수준의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몇 년이 더 흘러버리고 결국은 이전에 다니던 직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조건이 좋지 않은 우리 회사의 창고 직원 포지션에까지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 분들의 이력서를 받아 본 필자의 생각은 어땠을까? 학벌 좋고 좋은 직장 다녀본 경험이 있는 인재니까 좋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좋은 회사 다니고 자기 사업까지 해볼 만큼 야망도 있었던 사람이 지금의 근무 조건에 만족할 수 있을까? 몸 쓰는 일이고, 다소 거친 일인데 적응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생겼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이런 분들 대신 비슷한 업계에서 오래 일해왔던 다른 분을 채용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경력, 전문성이 창업 후에도 유지되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회사를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훨씬 더 큰 리스크를 갖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창업 전 고려해봐야 할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사업 관련 이야기임에도 고객이나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객에 대한 고찰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길고 힘든 길을 계속해 해쳐나갈 마음의 준비, 상황의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포스팅의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