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처음 창업을 하고 지금까지 10개가 넘는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진행을 해본 경험이 있다. 정부지원사업은 잘만 활용하면 초기 창업가에게 경제적으로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처음 창업을 생각하는 창업가가 정부지원사업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중요 포인트들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1. 한국은 정부지원사업이 아주 잘 되어 있는 나라다.
필자는 항상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정부지원사업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를 권하곤 한다. 제대로 준비된 창업자라면 정부의 창업지원금을 통해 사실상 큰 자본의 소모 없이 초기 몇년을 운영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창업도약패키지처럼 창업 기업의 성장 단계 별로 맞춤화 된 정부지원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은 대부분 투자금이나 대출금이 아닌 순수한 ‘지원금’을 제공한다. 자금의 대가로 지분을 제공해야 하는 투자금도,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하는 대출금도 아니라 순수하게 사업하라고 주는 돈이라는 말이다.
지원해주는 자금의 규모도 작지 않다. 앞서 언급한 창업 패키지들의 사업비 규모는 대략 연 7천만원에서 많으면 1억원을 훌쩍 넘어간다. 사업에 따라서는 사무공간까지 제공해주는 경우도 있다. 많은 인력을 처음부터 고용해 규모를 크게 시작하는 사업이 아니라면 저 정도 금액이면 1년 운영비 중 굵직한 금액들은 거의 다 커버가 된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사업 외에도 본인의 업종에 맞는 다양한 정부부처들의 지원사업을 활용할 수 있다. 콘텐츠 업종이라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다양한 사업들을 활용해볼 수 있다. 농수산물과 관련된 업종이라면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사업들에 도전해볼만 하다. 초기 창업 기업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중기부와는 다르게 이런 정부부처들은 창업 기업의 업력을 따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업들을 잘 활용만 한다면 창업 초기가 지나서도 생각보다 오랜 기간동안 정부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 매년 수천만원에서 많으면 억 단위의 운영 비용을 지원받는다는 것은 창업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혜택이고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창업을 고민한다면 정부지원사업에 대해 적어도 적극적으로 알아는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넉넉한 금액을 투자 받았다고 해서, 혹은 귀찮다고 해서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혜택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지원사업이 만능도 절대 아니며 쉽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2. 선정되는 비법 같은 것은 없다.
정부지원사업이 너무 잘 되어 있다 보니 한국에는 이걸 중심으로 흥미로운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정부지원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회계법인, 세무법인들도 있고 다양한 지원사업을 실무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도 꽤 많다. 지원사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전문 강사나 멘토로 출강하는 ‘직업 멘토’들도 많다. 초기 창업가라면 그 중에서도 사업계획서를 고도화 해주거나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준다는 업체들의 홍보 문구를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서비스들이 의미가 없다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여러분이 지원사업에서 계속 탈락하고 있다면 그건 결코 사업계획서 작성 노하우가 부족해서, 혹은 발표 스킬이 미숙해서가 아니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그냥 그 만큼 아이템이 매력이 없고 여러분의 팀이 가진 역량이 남들이 보기에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정부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어떤 회사를 선정하고 싶겠는가? 당연히 상부에 보고하기 좋은 성과를 만들어줄 수 있는 회사를 선정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기한 내에 제품을 출시하고, 매출을 만들어내고, 수출 실적을 만들어내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회사 말이다. 그런 실적들이 결국은 그 담당자 본인의 실적과 승진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지원사업의 선정 과정은 꽤 정교하게 설계가 되어 있다. 벌써 십수년간의 운영으로 노하우가 축적된 정부의 시스템을 너무 쉽게 봐서는 안 된다. 서류 심사, 발표 평가 모두 업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잘 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하도록 되어 있다. 성공 확률이 높은 좋은 아이템, 능력있는 팀이 선정될 수 있는 구조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여러분의 사업 아이템이 누가 봐도 괜찮아야 하고 여러분의 팀이 누가 봐도 그걸 해낼 수 있을 만큼 유능해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갖춰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잘 정리된 사업계획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좋아하는 키워드가 몇가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출, 고용 뭐 이런 것들이다. 준비하는 지원사업의 특성에 따라 친환경, 고령화 등 추가로 언급할만한 다른 키워드들이 생겨날 수 있겠지만 외화벌이와 고용창출을 싫어하는 정부부처는 없다. 회사의 미래 비전을 보여줄 때 이런 부분들이 유의미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적절하게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기본적인 사업성이 받쳐줄 때 설득력이 생겨난다.
‘우리 회사는 업계 경력이 탄탄한 베테렝들이 모인 회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업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매년 이렇게 빠른 매출 성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해외 진출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이 제품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시장성도 상당 부분 증명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적극적인 고용창출을 할 예정입니다.’
이런 식의 논리구조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누가 봐도 뽑고 싶은 사업보고서가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논리구조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실질적인 역량과 실적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사업보고서 작성 스킬이나 PPT를 아름답게 꾸미는데 시간을 쓰기 보다는 여러분의 한정된 리소스를 실제로 증명될 수 있는 뭔가를 만드는데 쓰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3. 정부지원사업에는 여러 제약 조건들이 따른다.
정부지원사업을 중심으로 창업 계획을 세운다면 미리 알아둬야 할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거의 대부분의 창업지원금은 해당하는 금액을 창업 회사의 계좌로 입금 해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8천만원의 지원금에 선정된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부는 그 회사의 계좌로 8천만원을 입금해주지 않는다. 대신 회사는 예산 집행계획이라는 것을 세우게 된다. 8천만원 중 5천만원은 직원A와 직원B의 인건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3천만원은 광고비로 쓰겠다는 식의 계획 말이다. 그 계획에 따라 정부는 해당 금액이 필요해지는 시점에 바로바로 필요한 직원이나 거래처의 계좌로 직접 금액을 입금해준다. 물론 원천징수 등의 이유로 회사 계좌를 거치는 경우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필요할 때마다 정확히 그 만큼의 금액을 정부가 최대한 회사 계좌를 거치지 않고 입금해주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유는 창업지원금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극대화하고 부정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지원 사업별로 돈을 쓸 수 있는 분야 역시 엄격하게 정해져있다. 어떤 지원 사업은 제품 개발만을 지원한다. 이 경우 마케팅 비용 명목으로는 돈을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초기 창업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중기부의 사업들은 대표자의 급여는 지원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아주 조금이라도 사업 외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비용들, 예를 들면 식비나 비품 구입비 등은 인정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부지원사업을 준비하기 전 해당 사업이 어디까지 사업비 집행을 허용하고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자금 운용 계획을 세워야 한다. 대표자 급여가 인정되지 않으니 대표자는 본인 생활비를 다른 방식으로 마련해야 한다. 마케팅 비용이 인정되지 않는 사업이라면 마케팅 비용을 창업자의 보유 자금이나 대출 등의 다른 방식으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4. 약간의 시간 투자는 피할 수 없다.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사업을 수행하는 일은 적지 않은 서류작업과 대표자의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한다. 물론 상식적이지 않은 수준의 업무량은 결코 아니다. 그간 많은 전산화와 간소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자가 본업과 함께 진행할 경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사업비 집행을 진행할 때마다 관련 서류작업을 해야 한다. ‘이번에 직원 A에게 월급을 300만원 줄테니 승인해주십시오’와 같은 내용을 공식적인 서류를 만들어 요청해야 하고 그 금액이 직원 급여로 잘 집행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서류들을 제출해야 한다. 급여명세서, 송금확인증, 사대보험가입자명부 같은 서류들을 매번 돈을 쓸 때마다 준비해서 제출해야 한다.
초기 창업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참여했다면, 서류작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멘토링에도 참여해야 한다. 매주 몇 시간 이상 강의를 수강해야 하는 식의 기준을 갖고 있는 지원사업도 있다. 어떤 사업은 2박 3일로 워크샵 같은 것을 가기도 한다. 필자도 그런 사업에 선정되어 참여했던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다행히도(?) 코로나 사태가 터져 워크샵이 불발되었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겪어본 지원사업 중 가장 시간 소모가 심했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주관 기관이 연말 보고를 위해 큰 행사를 열었고 모든 기업들이 그 행사에 참여를 했어야 했다. 준비해야 할 일의 양이 단순 서류 작업이나 강의 수강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고, 이를 위해 직원들이 행사장 근처에 숙소까지 구해가며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었다.
이처럼 지원 사업의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물론 강의, 멘토링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 회사들이 처해있는 독특한 상황을 강사나 멘토들이 모두 이해할 수는 없기에 유용한 시간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숙제정도로 느끼는 창업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만원의 돈을 대가 없이 지원해주는 것의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은 한다. 사실 아주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지원사업이 어느 정도의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는지 미리 검토해보고 정말 이 사업에 참여할 리소스가 본인에게 있는지 미리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이런식의 시간 소모는 혼자서 다양하고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창업자 입장에서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 또 다른 기회를 열어주기도 한다.
정부지원사업에 참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과의 인맥이 생겨나게 된다. 사업 기간 동안 한 두번 정도 벤쳐투자자를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정부지원사업은 실질적인 운영을 정부기관이 직접 하지 않는다. 운영에 전문성을 갖춘 민간 엑셀러레이터 등에게 위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들과의 친분도 생겨나게 된다. 물론 여러분이 사업을 잘 운영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다면 훨씬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해나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관계들이 실제 투자로 연결되거나, 대표자의 강연 기회, 컨설팅 의뢰 같은 것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초기 창업 기업의 대표자가 여기 저기 강의를 하러 다니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걸 너무 많이 하다보면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헛바람이 들게 되기가 쉽다. 회사 매출은 영세한 수준에 이익은 나오지도 않는데 여기 저기 강의를 하러 다니다 보면 마치 내가 대단한 성공이라도 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겸손한 자세를 잃는 것은 초기 창업 기업에게 치명적이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의사결정들을 하도록 사람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좋지 않게 본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강의나 컨설팅 같은 일들은 적절하게만 활용된다면 회사의 인지도를 높여줄 수 있고, 대표자에게는 괜찮은 부수입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 이런 기회들이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찾아왔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정치쪽과 연결되어 사업에서 정치쪽으로 커리어가 풀려나가고 있는 있는 창업자들도 있다. 창업자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기 쉽다. 자신이 만든 회사 밖에 있는 것들을 전혀 보지 못하고 큰 세상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 큰 리스크다. 그런 의미에서 거대 기관이 주체하는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창업 기업이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단,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본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이 언제나 전제되어야만 한다.
처음 창업을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글을 시리즈로 준비해보려고 하고 있다. 이번 포스팅은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형태의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여기를 클릭해 해당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바란다.